눈여겨보고 있던 단지의 로열층 매물이 딱 한 개만 남아서 얼른 집을 보고 나서 투자결정을 했다.
처음엔 부모님 노후 임대사업용도로 생각했지만 해당구청 세무과에 문의를 해보니 현재 살고 계신 농어촌 주택이 주택 수에 포함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 2주택인 부모님이 매수하게 되면 다주택자 취득세가 중과되기 때문에 동생에게 투자를 권했다.
취득세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해당 시군 또는 구청 세무과에 성명, 주민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알려주고 문의하면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니 참고하시길.
동생은 “난 그런거 잘 모르니 형이 알아서 해줘.^^”라고.^^” 전권을 위임해 줬다..
하지만 머나먼 태국땅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동생을 대리해서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서류가 필요했다.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원 같은 서류는 공인인증서로 발급받아 pdf 파일로 전송받으면 문제없지만 인감증명서만큼은 재외공관의 확인을 받은 위임장을 첨부해서 한국에서 대리발급받아야 했다.
동생은 대사관을 방문해서 서류를 발급받아 DHL 항공특송으로 발송했고 단 하루만에 서류를 받아볼 수 있었다.
세상 좋네.^^
가격은 1150바트 한국돈 대략 4만3000원.
서류를 받은 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인감발급을 위해 인근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대략 10분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자 인감발급 위임장을 내밀었는데, 직원이 서류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다.
통화를 마친 직원은 “해 드리고 싶은데... 95%의 부동산 사기문제가 인감 대리발급이 원인이어서요. 블라블라~~”
결국은 어렵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대리발급을 위해 제시한 동생의 신분증이 사본이라 불가능하단다.
“관련근거가 뭡니까?”
나 역시 15년의 공직생활 경력이 있어 잘 알고 있다. 한 번 내린 결정은 면피 가능한 관련근거 없이는 뒤집기 어렵다는 것을...
담당직원은 다시 한번 전화를 걸더니만 이번엔 포스트잇 색인이 덕지덕지 붙은 ‘인감증명 사무편람’을 뒤적거리더니 아래 내용을 보여주었다.
<189p> 허용되지 않는 신분증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고 사례로 신분증 사본, 스마트폰의 사진 등은 신분증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나와있다.
동생의 인감을 신청할 때 같이 신청한 내 인감증명서도 취소해 달라고 했지만 담당 직원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한번 신청된 인감은 환불이 불가능하다며 1800원을 결제했다.
결국 아무 쓸모없는 내 인감증명만을 손에 쥐고 군말 없이 돌아섰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왠지 모를 불합리에 대한 화가 불같이 일었다.
‘고작 신분증 하나를 받기 위해 또 DHL로 보내야 하나? 동생과 나는 왜 미리 확인하지 못했고, 대사관은 왜 아무 언급도 해주지 않은 것일까?, 해외에 사는 사람의 신분증 원본을 국내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나?, 해외에서는 여권이 신분증인데 해외체류 중인 사람의 원본을 본국에서 요구한다고??’
‘어라? 행정사 실무교육을 받을 때 제외공관의 확인을 거친 서류는 특수성을 갖는다고 배웠는데...’
집에 도착할 무렵 마지막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나는 차를 홱 돌렸다. 차는 주민센터 주차장에 대충 비상등을 켠 상태로 세워두고 대민업무 중인 그 직원에게 낮고 굵게 몇 마디를 던졌다.
“이거 대사관 확인을 받은 서류인데 당신 말대로 신분증 원본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 바랍니다. 내 생각이 맞으면 당신의 미흡한 업무처리에 대해 민원을 넣을 생각이니 제대로 하시는 게 좋을게요.”
담당직원은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정 그러시면 거기 놓고 가세요. 확인해 볼게요.” 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오만불손한 태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핸들을 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좀처럼 연락은 오지 않았다.. 주차를 하고 디지털도어록 비번을 누르기 직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주민센터 대표전화.
직원은 갑자기 선생님이란 단어에 극존칭을 붙여가며 장황하게 설명을 해대고 있었지만 나는 말을 끊고 하나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발급이 됩니까? 안됩니까?”
“네. 오시면 됩니다.”
인감증명서 발급을 위해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운전해서 주민센터를 세 번째 가는 동안 시간은 벌써 두 시간이 넘게 흘렀고 머릿속엔 그 직원의 처분에 대한 생각만 맴돌았다.
‘국민신문고에 업무처리 미흡으로 민원을 넣을까? 아님 동장 면담을 신청할까?’
내가 주민센터에 들어서자 앉아서 업무를 보던 그 직원은 벌떡 일어서 90도로 인사를 하더니 앞선 민원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동생의 인감증명발급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니 한편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과다한 업무에 고만고만한 급여, 자칫하다가는 나 역시 진상 민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까와 같은 한마디를 물었다.
“관련근거가 뭡니까?”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인감증명법 시행령 13조를 찾아보면 인감증명서 발급 시 본인 및 대리인의 주민등록증 등을 제출해야 하지만 해외거주(체류) 자인 본인이 재외공관의 확인을 받아 위임장을 제출하는 경우는 제출의무가 없다.
답을 알고 나니 더 씁쓸했다. 사무편람은 형형색색 테이프로 표시까지 하며 손때 묻을 때까지 뒤적거렸지만 정작 근간이 되는 상위법령 조문을 몰라 이 개고생을 하게 만들다니...
“선생님이 인감발급 담당자 아닙니까? 전 민원인이구요. 제대로 좀 합시다.”
기름값과 피 같은 두 시간을 날렸지만 생생한 글감을 얻은 것으로 대신하기로 마음을 먹고 가벼운 타박으로 마무리했다..
인감증명서 발급절차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기는 어렵겠지만 경험칙상 이러한 규정의 틈새에서 얻는 이익은 꽤나 쏠쏠하다.
시행규칙이나 업무편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위 법령, 시행령 조항을 찾아내거나 어떤 것들은 제외한다는 틈새를 확인하고 정리해 둔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경쟁 없이 얻을 수 있다.
대충 생각나는 것들을 열거해 보자면
- 농지취득증명이 필요 없는 토지
- 초지와 임야를 농지로 지목변경이 가능한 조건
- 건축법상 도로에 접하지 않아도 건축이 가능한 토지
- 농업보호구역의 단독주택 건축
- 임업용 산지의 공장설립
- 농업진흥지역, 개발제한구역 해제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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