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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갤러리

보거나? 말거나! 꼰대기장의 허접한 인생조언 (feat. 비행낭인)

by 멘토파일럿 2023. 7. 13.

어제 제 포스팅을 읽은 한 청년이 메일로 조언을 구해왔습니다. 허접한 답변이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젊은 분들에게 도움 되는 내용이 될 수도 있어 가져와봤습니다. 

질문은 검은색, 제 답변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꼰대기장 섬네일

기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00에 사는 000입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00 대학에서 00학과를 졸업해 여직 소위 말하는 비행낭인입니다. 00000 카페에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기장님의 글은 저에게 현실적인 영양분이 가득해 읽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려주신 "잘 번다고 깝죽대다 개피 본다!"에서 말씀하신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조종사가 전문직이 될 수 없는 이유로 말씀하신 전문 기술이 사업으로 연계되기 어렵다는 점과 고소득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수입의 한계가 정해져 있는 월급쟁이라는 부분은 요즘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1. 비행을 하는 동안 따라다니는 불확실성에 대해 기장님께서는 어떻게 대비하시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시나요? 이와 관련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2. 기장님 말씀처럼 비행 기술은 개인 사업으로 연계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월급이 넉넉하다고는 하나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후 준비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종사로서 삶 속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로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리스크를 관리하시는지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1,2번이 비슷한 질문인 것 같아 한꺼번에 답변을 드립니다.

 

제가 가진 공인자격은 조종사 외에도 공인중개사, 행정사, 건설기계(포크레인)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직장인의 연봉 수준 금액을 부동산 임대업으로 벌고 있고, 부동산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  연금 등으로 사실 노후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준비해 놓은 편입니다.

목적지 주변에 예비공항도 없는데 연료까지 달랑달랑한다면 심적 부담이 상당하겠죠. 반대로 갈 수 있는 예비공항이 많거나 연료가 충분하다면 혹시 모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그라집니다.

한정된 시간에 가장 효율이 좋은 업이 조종사여서 계속하는 것일 뿐 혹시 업황이 나빠진다거나 건강 등 기타의 이유로 비행을 못하더라도 수익은 다소 줄겠지만 진입장벽이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는 경험과 실력도 있기 때문에 충분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철없는 시절 제 취미는 음주, 테니스, 골프 등 이었습니다. 특히 골프에는 심각하게 미쳐 출근 전 연습장에 들려 연습을 하고 퇴근 후에도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선후배들과 운동하고 술 마시는 게 한 주 일과였습니다.

 

지금은 모두 하지 않아요. 산책, 독서, 글쓰기, 스터디 정도가 새롭게 얻은 취미입니다.

대부분 바쁜 삶을 사느라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이 즐기지만 정작 미래를 위해서는 필요 없는 것들을 도려내야 비로소 새로운 부분이 채워진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영어 과외로 용돈을 벌며 부모님과 생활하다가 최근 사무실을 얻어 작은 1인 독립 출판사를 차렸습니다. 여전히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영어 과외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전자책 출판하는 일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첫 책으로 항공 관련 책을 냈는데 제가 전공을 살려 스스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사업도, 과외도 잘 하고 계시네요. 본인 능력껏 돈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저 역시 대리운전, 배달, 포크레인 기사 등으로 돈을 벌어보았고 행정사 사무실에서 실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동대표, 재테크 과외, 경매강사 등으로 틈틈이 부업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항공사에 가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채용 시장에 봄이 올 때를 위해 공부도 계속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비행을 시작한 뒤로 계속 시달려 온 것이 불확실성입니다. 사무실을 얻은 뒤로는 이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여러 기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습니다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취업 후에도 책 쓰는 일도 취미로 이어가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럴 때 마다 뭔가 새로운 목표를 새우고 계획하는 동안 불확실성이 영향을 줄까 걱정이기도 합니다.

 

제 딸아이가 재수를 하는데요. 연초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는 말에 제가 해준 말이 있습니다. “그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네가 생각하는 100점짜리 결과라면 혹시 떨어져도 95점짜리 혹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어. 대학은 시작일 뿐 취업 등 인생에 당면할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모든 시험에 합격할 수는 없단다. 단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해서 꾸준히 도전하는 태도가 삶의 질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줄 거야. ”라고 했습니다.

 

3 입시에 실패하고 한참 힘들어할 때 제가 딸아이에게 권해준 것은 독서였습니다.

윤홍균 작가의 자존감 수업과 같은 멘탈을 잡아주는 책들이었죠. 그렇게 잡혀진 멘탈덕인지 재수학원 같은 데 가지 않아도 한 달 2만 원짜리 아파트 독서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재수생의 일과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녀석의 재수일기 블로그가 재수생에게 인기가 좀 있는 탓인지 저보다 이웃이 많은 건 비밀입니다. ㅎㅎ

 

조종사가 되면 좋겠지만 되지 못한다고 해서 망한 인생은 아닌 거죠.

제가 아는 기장님 중엔 도박, 금전문제, 가정환경 등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이 여럿입니다. 반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항공사를 때려치우고 수십수백억을 자산을 이루고 유명 인플루언서가 되신 분도 있구요.

 

어떤 직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일은 다릅니다. 실상 하고 싶은 것으로 돈벌이하며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장 저만해도 지금 받고 있는 월급만 따박따박 들어온다면 집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끄적거리고, 산책이나 하지 이 장마철에 비행하면서 개고생 하긴 싫거든요.

 

  지금 에어프레미아 채용전형이 진행 중입니다. 서류를 넣고는 서류 결과에 따라 그 뒤로의 계획이 정해질 것이라 서류 결과 발표까지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몇몇 기회를 포기해야 했고 결과 발표일 이후의 계획은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서류 결과가 나오니 이제는 필기시험을 봐야 해 그때까지 공부에 집중해야 하고 또 필기시험 결과 발표 이후의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심지어 필기 결과 발표일은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는 심 전형을 준비해야 할지 말지도 모르고요.

 

  작년 섬에어 채용 때도, 이전의 티웨이 채용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행을 하는 동안 불확실성은 유도항력 같은 느낌으로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나중에 취직이 이뤄지고 가정이 생겼을 때에는 제 직업에서 오는 불확실성이 가족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조종사라는 직업은 벌이에 비해 리스크가 더 크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공군에서 1년 반 동안 비행훈련을 받을 때 절반만 빨간마후라를 목에 둘렀고 나머지 동기들은 일반특기로 전환되었습니다. 지금 그 친구들 각자의 위치에서 공군을 이끌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동산도 주식도 우상향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본인이 관리만 잘하면 우상향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날씨는 우리가 감히 바꿀 수 없는 영역이죠. 좋은 날이 있다면 분명 궂은날도 있는 게 삶이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과 한탄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집중하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적고 보니 두서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괜한 이야기까지 과하게 쏟아낸 거 같아 민망합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조종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무의미합니다.. 전 무당도 아니고 단지 ‘응원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물으신다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인생길도 할 수 있는 것에 몰입하면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답을 드리고 싶네요.

 

우리는 하루하루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같은 조건, 같은 환경 속에서 천국을 살지, 지옥을 살지 결정하는 것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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