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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갤러리

내 비행실력이 형편없는 이유 [feat. 중국항공 129편 추락사고]

by 멘토파일럿 2023. 7. 2.

장맛비가 한참이던 지난주 내내 동북아 순회비행을 했었죠.

나쁜 날씨에 대해 언급을 했더니, 옆에 앉은 똘똘한 부기장이 부끄럽지만 본인이 날씨요정이랍니다.

 

내 비행실력이 형편없는 이유 섬네일

 

날씨요정그게 뭔데요? 물으니, 나쁜 예보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비행을 나가면 날씨로 인해 공중대기를 하거나 목적지에 내리지 못하고 회항해서 예비공항으로 가야 하는 등의 고생스러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없어 그렇게 별칭을 붙였답니다.

 

별일 없이 정년을 맞이한 조종사가 마지막 비행의 출국장에서 가족과 동료의 축하를 받는 것. 실력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대부분의 조종사가 원하는 미래이자 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날씨가 좋은 게 꼭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29편 추락사고 스크린샷 [출처 : 나무위키]

 

2002415일 오전비행을 마치고 일찌감치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부대내 사이렌이 울리며 방송이 나왔습니다. 기지 북쪽 돗대산에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하더군요. 129명을 사망에 이르게한 이 사고의 조사결과 원인은 조종사의 조작미숙이었습니다.

해당편의 신참기장은 날씨가 좋을 때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교적 쉬운 직진착륙의 방법으로만 김해공항을 접근해 봤을 뿐, 반대방향으로 공항주변을 돌아내리는 선회접근은 경험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본인도 경험이 없는 조작을 부기장에게 시키기도 했죠.

만약 날씨가 좋았다면 직진착륙으로 아무 문제 없이 잘 내렸을 겁니다.. 그럼 이 기장은 운이 없었던 것일까요?

 

언젠가부터 저는 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죠. 운이 좋을 때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때론 억세게 운 나쁜 상황도 마주한 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역경을 이겨내야 비로소 내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많은 부분 사그라진다는 것도요.

언제나 운이 좋길 바라는 내심엔 운이 나쁘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도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격고 나면 두려움대신 자신감이 생겨나죠.

 

투자 초보시절 골프장의 진입도로로 쓰이는 농지를 두고 골프장 측과 담판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내용증명을 통해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굴삭기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밭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통보한 상황.

면소재지 지하다방의 담판장으로 걸어내려 가는 길이 어찌나 떨리던지 부모님께 1시간 내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경찰서에 연락하라는 당부까지 해두었더랍니다.

어떻게 되었냐구요?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아직 쌩쌩합니다. ^^

지금은 쌍욕과 협박보다 내 부름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두렵습니다.

 

김해공항의 선회접근 쉽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절차나 조작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 번접근 해야 한번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나쁜 날에만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착륙방법입니다. 물론 시뮬레이터로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VR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과 실제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것의 차이랄까요. 느껴지는 중압감과 멘탈면에서 비할바가 아닙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머물러 있으면 안전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비행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 제한치 범위내에서 승객과 화물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비행기와 조종사의 역할입니다. 전쟁이 장군을 만드는 것처럼 나쁜 날씨가 조종사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날씨요정 덕분에 골치 아픈 상황 없이 이번 비행도 잘 마치고 왔습니다. 제가 늘상 실력이 모자란다는 타박을 듣는 이유는 아마도 저런 운 좋은 부기장을 너무 많이 만나는 탓이 아닐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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