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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갤러리

Born to Steal, 팬암의 귀환 (feat. 캐치 미 이프 유 캔)

by 멘토파일럿 2023. 5. 22.

199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팬암항공이 한국의 의류브랜드로 돌아왔다. 내가 하늘을 날기 전부터 이미 날개를 접었던 팬암이지만 15초짜리 광고영상 속 팬암로고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상반된 교훈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https://youtu.be/Eg91 oGK6 wrs

 

팬암항공 소개

팬 아메리칸 항공은 1927년 운항을 시작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장악했던 당대 최고의 항공사였지만 1991년 파산했다. 남아메리카는 물론 태평양, 대서양을 세계최초로 정기운항했으며 독특한 외형으로 아직도 전 세계를 누비는 점보항공기 보잉 747은 팬암이 보잉에 직접 개발을 의뢰해서 만든 항공기이다. 객실 승무원 배치, 핫밀 제공, 기내 주방, 기내 엔터테인먼트 제공, 비지니스 클래스 등 우리가 기내에서 당연한 듯 여기며 받고 있는 서비스들은 모두 팬암이 세계최초로 서비스를 제공한 것들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그 시절 제작된 SF영화에서 우주선과 같은 미래의 운송수단이 팬암의 로고를 달고 있는 것은 당시의 분위기로는 당연했을 터. 팬암이 망하리라고 상상하기가 더 어려웠을 테니까...

오랜 역사만큼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겠지만 내게 팬암, 특히 파란색 지구를 형상화한 그 회사의 로고는 두 가지 사건  '테네리페 참사'와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회상하게 한다. 

 

테네리페 참사

1977년 스페인 테네리페 섬에 해무로 앞이 보이지 않는 날씨에 활주로상에서 이륙하던 KLM 항공사의 B-747과 지상에서 이동 중이던 팬암의 B-747이 충돌한다. 이 사고로 583명이 사망하며 항공역사 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다. 사고의 원인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손꼽히는 원인은 KLM 기장의 인성문제였다. 12,000시간이 넘는 경력과 후임 기장을 교육하는 선임교관, 잘 생긴 외모로 회사 홍보물 모델로 활동하는 등 회사에서 잘 나가는 베테랑 기장이었지만, 평소 성격대로 사고당일 역시 부기장과 탑승정비사의 조언을 비꼬듯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6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참사의 주범이 되고 말았다.

꼴랑 두세 명 타는 조종석에서 갑질하지 말라는 교보재로 수없이 회자되지만 좁아터진 칵핏만큼이나 속 좁은 행동과 말뽄새로 비행안전을 위협하는 꼰대기장이 아직도 꽤나 많은 듯하다.

시야를 조금 돌려 광활한 하늘을 품으면 좋을 텐데... 폰에 있는 비행기 모드를 켠 것처럼 땅에서 발만 떨어지면 꼰대모드를 ON 시키는 나에게 하는 하소연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실제주인공인 애버그네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2002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다. 팔짱을 끼고 공항 터미널을 활보하는 승무원의 큼직한 비행가방과 욕조 가득한 모형비행기에서 떼낸 스티커를 핀셋으로 조심스레 붙여 위조수표를 만드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팬암로고는 불과 15초짜리 광고를 통해 다시 나타나 20년 전 영화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정성스레 만든 위조수표를 자세히 검사하던 미모의 은행원 눈초리는 디카프리오의 말 한마디에 미소 짓는 눈꼬리로 변한다. "정말 눈이 예쁘시네요."라는 한글 자막이었지만, 원문을 직역하면 "제가 본 눈 중에 가장 예쁜 눈을 갖고 계시네요"였다. 진정한 꾼의 멘트다. 같은 말도 그가 하면 스위트한 로멘티스트, 내가 하면 경찰서에 블랙리스트로 리포트...

그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때부터 두 가지를 강조한다. 배짱과 끈기

뉴욕 양키즈가 왜 항상 이기는 줄 아니? 다들 양키즈의 유니폼에 기를 빨리기 때문이지...
크림통에 빠진 생쥐가 어떻게 살아 나왔는 줄 아니? 열심히 발버둥 쳐서 크림을 버터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영화에 실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던 애버그네일은 죗값을 치르고 나서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수표사기 관련 FBI 최고 권위자로 일했으며 전공을 살려 위조가 어려운 안전한 수표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가출을 해서 도망자 생활을 했지만 단 2주간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비상한 두뇌를 가진 그는 아직도 변호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잘 살고 있다. 

아버지가 파산했다는 것과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일에서 돈 버는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버는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데 있어서 그와 나는 닮아있다. 단지 방법에 있어 불법과 합법의 차이가 있고, 그는 비범하며 나는 평범하다. 그가 가진 배짱은 없지만 난 끝짱을 본다.

 

Born to Steal

SJ그룹에서 새로 론칭한 팬암 의류브랜드의 카피는 "Born to Fly". 나쁘지 않다. 입고 나면 뭔가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 소비를 자극하기엔 적당한 멘트다. 미안하지만 딱 거기까지. 옷에 관심 없는 난 그들의 카피만 훔치기로 했다.

Born to Steal

마음을 훔치는 방법을 몰랐던 KLM기장은 결국 독선과 고집으로 제대로 된 허가도 없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고 그 성급함은 결국 수백의 인명을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날려 보냈다. 반면 뭐든 훔치는 데 능했던 애버그네일은 비록 감빵은 한 번 다녀왔을지언정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타인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본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잡아넣었던 FBI 요원과도 친구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요즘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 역시 핸드폰 커버에 신용카드 한 장뿐. 지갑을 훔쳐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지만 마음을 훔쳐 돈을 버는 방법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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