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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일상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될 거거든, 연진아! [feat. 왕따 흑역사 소환하기]

by 멘토파일럿 2023. 7. 25.

태고부터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밟고 있는 땅뿐일 것이다.

그 땅위에 있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역사가 되어 기록을 통해 소환된다.

나의 흑역사를 잔기술을 통해 소환해 본다.

 

왕따 섬네일

 

인생의 암흑기를 꼽으라면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건 3학년 때부터 인듯하지만 그래도 교우관계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5학년 여름 낯선 동네로 전학 가면서부터 난 철저히 혼자였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 말주변도 없고, 외모도 꽝이고, 싸움도 못하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던 나는 당연하게도 왕따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친구하나 없이 반년을 이름대신 쫀쫀이란 별명으로 놀림당하고 무시당하며 살았는데 웬걸, 5학년에서 6학년으로의 진학은 담임선생님만 바뀌었을 뿐 학생은 누구 하나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학급수가 적은 학교도 아니었는데... 제길!

결국 더럽고 못생기고 재수가 없다는 이유로 나와 짝이되어버린 모든 여자아이를 울렸던 나의 흑역사는 중학교로 진학하기 직전까지 1년 반 동안 이어졌다.

 

주민등록 초본 발췌

 

 

'대충 그때 쯤 그랬던 것 같은데…….' 라고 어렴풋한 기억은 기록을 통해 근거를 갖게 된다.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스무 번 가까운 전출입은 당시 어려웠던 우리 집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도꼭지가 다 잠기지 않은 상태에서 물이 졸졸 나오면 계량기가 돌지않는다고 수도를 틀지 말고 큰 다라에 모인물을 받아 사용하라고 했던 신풍동 한옥집 할아버지는 퍼세식 화장실 직사각형 시멘트 변기 주변에 오줌이라도 튀는 날엔 엄마에게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기센 집주인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 일년만에 이사 간 집은 길가 단칸방이었다.

 

반장과 친하진 않았지만 생일날 반 전체를 초대 해줘서 딱 한번 놀러 간 기억이 있다. 학교 바로 건너편 2층 양옥집으로 들어가는 마당엔 잔디와 디딤돌이 예쁘게 깔려있었다.

 

반장집으로 추정되는 사진

 

 

안타깝게도 내겐 가난했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꽃피웠던 삶의 기억은 거의 없다.

내 경험상 가난은 아프고 불편하고 창피한 것이었다.

 

길가 단칸방 사진

 

우리 집 들어가는 쪽문이 별도로 있었지만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가 쪽문을 가리고 있는 날만 눈치를 보며 문을 열었을 뿐 일부러 대문을 이용한 날도 많았다.

한여름 파란 양철지붕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창문은 늘 열려있었는데 하교후 집에 와서 첫 번째로 해야 했던 일은 까맣게 내려앉은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었다.

잔디깔린 반장네 집은 학교 바로 맞은편, 먼지깔린 우리 집도 학교에서 만만치 않게 가까웠다.

통학하는 학생들이 까치발만 들면 열린 창문으로 살림살이며 뭘 먹고사는지 다 볼 수 있었던 학교 앞 단칸방 생활은 흡사 속옷만 입고 사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엄마가 일을 나가지 않는 날은 몸져누운 날 뿐이었다..

내 기억 속 단칸방에는 아직도 자궁 외 임신으로 수술이 필요한데도 병원비가 없어 방 한쪽에 모로 누워 웅크린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엄마와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벌 떨며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다.

 

누가 봐도 살림집보단 주위의 시선이 머무는 상업시설이 들어와야 할 목 좋은 곳이기에 눈썰미 좋은 무당이 점집을 차렸지만 얼마못가 소공원이 들어섰다.

 

2010년 10월 전경

 

2014년 7월 전경

 

그 시절 반장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한때 아이러브스쿨같은 사이트를 통해 초등학교 동창 찾기 열풍이 불기도 했지만 문자한번 받지 못했다. 한명의 친구도 없었던 철저한 왕따였던 만큼 공유할 추억도 없기 때문에 그들도 나에게 연락할 필요성을 못 느낄 터..

 

하지만 언젠가 한번 만나서 말 한마디 나눠보고 싶다.

녀석이 어떤 멘탈을 가지고 있는지, 만약 기대와는 다르게 강한 멘탈을 가졌다면 그의 부모님 또한 뵙고 싶다. ‘결핍 없이도 단단한 멘탈을 유지하는 법’이 내 자식들에게는 필요할 테니까...

 

30여년전 내가 먹고자던 그 허름한 건물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당시의 흑백항공사진과 폐쇄등기부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뿐.

초본, 항공사진, 등기부를 이용한 잔기술은 오랜 과거를 제법 생생히 재연시켜 주었다.공적장부에서 조차 이 정도 뽑아내는데!’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은 블로그를 지속시키는 또 다른 핑곗거리가 된다.

소중한 것은 소중한 대로 쓰라린 것은 쓰라려서 기록할 이유가 된다.

소중한 기억도 “나 때는 말이야,” “~할 껄...” 같은 신세타령이 될 수도 있고, 잊으려 애써도 잊히지 않는 시련도 “그때가 바닥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스토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에 감정은 없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같은 이벤트도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따라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가끔씩 삶이 공평할 때도 있다고 느껴지는 건 불우한 환경으로 정서적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에게 아픔은 사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촉진시키는 성장호르몬이 된다.

 

돈 주고 맞으려면 비쌀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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